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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이루는 지도자 느헤미야

등록일 | 2009-10-18

주제 : 비전을 이루는 지도자 느헤미야
본문 : 느헤미야 6:15 ~19
말씀 : 박종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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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이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성공은 시련과 고통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많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겪어낸 뒤에 드디어 예루살렘 성이 완성됩니다.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15절)

52일 전, 한 사람 느헤미야가 고향소식을 듣고 앉아 울며 근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고향 예루살렘을 회복하고자 하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 함께 최선을 다해 성벽을 건축해 왔습니다. 그동안 외부의 적들은 온갖 악한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서 위협해 왔고, 내부적으로는 갈등과 다툼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나라, 예루살렘 성벽은 하나씩 완성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52일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심점이기에 성벽이 재건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했습니다. 삶의 터전이 회복되었고, 신앙의 근거가 회복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자신을 희생해 가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통해 비전이 성취된 것입니다.

‘엘룰월’은 8~9월을 말합니다. 처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은 것이 기슬르월(11~12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한 것이 니산월(3~4월)이니 대략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지 한 세기 가량이 흐른 뒤 비전을 품은 지도자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모든 역경을 뚫고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된 것입니다. 더욱이 성벽 건축을 시작한지 52일 만에 완성된 것은 당시의 모든 여건을 감안 했을 때 기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것은 비전을 품은 지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절망할 때 희망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의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이 ‘비전’을 품은 사람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16절)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일 안에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마쳤다는 소식은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을 두렵게 했습니다. 모두 완성된 성벽을 바라보며, 있을 수 없는 기적의 현장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을 보고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껏 이들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는 두려워했고, 낙담했습니다. 이들의 위협과 적대감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모든 것이 완성된 지금 두려워하던 이들은 당당해졌고, 당당하던 이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하나님이 하시면, 하나님이 이루시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더 이상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더 이상 두려운 존재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능력에 맞설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비전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사단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17~19절)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도 사단은 굴복하지 않습니다. 유다의 귀족들이 도비야와 편지를 주고받은 것입니다. 이들이 서로 내통하여 밀약을 주고받으며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였습니다. ‘아라’는 유다 족장 중 한사람이었습니다(스 2:5). 또한 도비야의 아들은 ‘베데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므술람은 성벽재건에 참가한 제사장이었습니다(느3:4,30).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당시 유대 땅에 돌아와 살던 유대 귀족들이 이방인 유력가 집안들과 통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어떤 이유에서든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 풍습에 물들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 귀족들은 당시 그 땅의 세력가들과 통혼함으로서 정치적으로나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유리한 선택을 했습니다. 결국 도비야는 유대 귀족들과의 관계를 이용해 성전 건축을 끝까지 위협했습니다. 인간적이고 개인적 관계를 앞세워 유다 민족 전체의 유익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비야는 이방인으로서 당연히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해도 유다 지도자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타락하면 삶이 타락하기 마련입니다. 공동체의 유익, 하나님 나라의 유익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표리부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유다백성들이었지만 속은 이방인 보다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것 같았지만 속은 썩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명예스럽게도 역사 앞에서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같이 수고 했고 고생 했지만 부끄러운 결과만 남은 것입니다.

어떤 부정한 일, 불의의 방법을 동원한다 해도 하나님의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비전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역사 앞에 위선자로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지 마십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당당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할렐루야!

2009-10-25
200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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